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중 하나로 꼽히는데, 탑에서 나타나는 건축 양식은 [[전탑]]과 [[목탑]]의 특징이 모두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며 일종의 [[모전석탑]]으로 볼 수 있다. 또한 모전석탑과 석탑의 과도기와 같은 형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한다. 탑의 구조는 1층으로 된 기단 위에 5층의 몸돌(=탑신)과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으며, 현존하는 대다수의 다른 탑들처럼 5층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은 약간의 밑받침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사라지고 없다. 탑리리 오층석탑을 구조적으로 보면 모전석탑으로 분류된다. 하지만 본 석탑은 한반도 모전석탑 가운데 가장 초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[[경주 분황사 모전석탑]]과는 형태를 달리하는데, 탑신을 벽돌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지붕돌을 층층이 쌓은 형태로 다듬고 짜맞추어서 [[처마]]와 지붕이 층단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놨다. 다만 4층과 5층의 지붕돌은 다른 돌들로 짜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든 것이다. [[파일:국보77호의성탑리리오층석탑기단부및일층감실.jpg]] 1층 탑신의 남쪽면에는 [[감실]]이 만들어져 있는데 본래는 그 안에 [[불상]]이 모셔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. 감실의 테두리는 양각하여 문처럼 조형해놨다. 각 층의 탑신에는 기둥형 장식이 네 모서리에 있고, 탑신의 2층부터는 모서리 뿐만 아니라 각 면의 중앙에도 기둥형 장식을 만들어놨는데, 이 기둥형의 장식들은 목조 건축의 양식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. 돌을 단순하게 기둥 모양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, [[배흘림기둥]]으로 조각한 것이다. 배흘림 기법은 건축물의 무게감을 약화시켜서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하는 방식인데, 한반도에선 목조 건축물에 주로 사용되었다.[* 한반도에 현전하는 목조 건축물 중 배흘림 기법이 사용된 대표적인 예로는 [[영주 부석사 무량수전]]이 유명하다.] ||[[파일:국보77호의성탑리리오층석탑근거리.jpg|width=750]]|| || 가까이서 본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. 상승감이 상당하다. || 탑리리 오층석탑은 높이가 약 10m에 달하여 그 자체도 꽤 높은데다가, 위치도 넓은 평야에 있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아 더욱 치솟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, 각 층의 지붕돌은 장대한 편이라 무게감까지도 상당한데, 배흘림 기법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시각적인 안정감을 준 것이다.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모전석탑이지만 목조 건축의 양식을 모두 보이고 있는 특이한 사례이자 모전석탑과 석탑의 과도기 형태를 나타낼 뿐더러 원형도 대체로 잘 보존된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높으며, 그 크기도 웅장하여 장중한 미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미적 가치도 높다.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일찍이 이러한 가치들을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[[대한민국의 국보|국보]] 제77호로 지정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